아랫마을 하동 사람 윗마을 구례 사람 /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 한 번 와 보세요 /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조영남의 ‘화개장터’ 노랫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 화개장터는 지리산의 정기를 품은 많은 임산물들이 몰려 있는데다, 영·호남 지역화합의 상징적인 위치 덕분인지 관광객들도 제법 찾는 장터이다.
이 화개장터의 건너편 야산이 6.25참전 학도병의 첫 전투인 ‘화개전투’ 전적지로서, 매년 7월 25일에 이곳에서 ‘화개전투 전몰학도병 추모제’가 열리고 있지만 이 화개전투의 주인공이 ‘잊혀진 어린 호국영웅’ 전남의 어린 학도병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6.25전쟁 남침으로 북한군이 남하해 오자, 1950년 7월 13일 전남 여수와 순천, 광양, 보성, 강진 등 17개 중학교의 15세에서 18세 학생 180여 명이 조국 수호의 혈서를 쓰고, 당시 순천에 임시 주둔하던 국군 15연대에 자원입대하여 전국 최초로 학도병만으로 구성된 부대를 만들게 된다.
이들은 6개 소대의 독립 학도 중대로 편성돼 9일간의 기초훈련만 받은 후 M1 소총 한 자루만 든 채 군복도 없이 학생복 그대로 바로 전선에 투입됐다.
이 학도병 부대는 7월 25일 오전 국군과 경찰이 이미 퇴각한 상태에서 화개장터 건너편 야산 진지에 배치됐으며, 경남 진주를 점령하기 위해 섬진강변을 따라 통과하려던 북한군 6사단 선봉대대에 맞서 12시간 가량 처절한 사투를 벌였는데, 이 전투가 6.25전쟁의 수많은 전투 중에서 처음으로 학도병이 참전한 화개전투이다.
화개전투는 북한군의 서부경남 진입을 지연시킨 매우 중요한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학도병 70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다.
학도병들이 처절한 전투를 벌리며 적의 진격을 늦추자 그동안 전열을 재정비한 국군과 미군이 27일 하동에 투입돼 또다시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채병덕 사령관과 수백여 명의 미군이 전사했다.
두 차례의 전투로 북한군이 7월말까지 하동에 발목이 묶였다. 한시가 급박한 상황에서 학도병들의 영웅적인 활약으로 간신히 최악의 위기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학도병들은 이후 진주 남강 방어선과 진동리 지구전투, 낙동강 방어전 등에 투입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를 기리기 위해 전남에서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6.25참전학도병충혼선양회(회장 고효주)를 중심으로 전남지역의 어린 학도병들이 자원입대한 7월 13일을 기념해서 ‘전남지역 학도병 출정식’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특히 이번 기념식에서는 6.25전쟁 학도병 최초의 전투인 화개전투일 7월25일을 ‘6.25참전 학도병의 날’ 정부 기념일로 지정해 줄 것을 촉구하는 청원서가 발표되어 큰 울림이 되고 있다.
이는 6.25 전쟁 발발 후 73년이 지났지만, 어린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미래세대에 계승시켜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각성시키는 것으로, 모든 국민이 함께 6.25참전 학도병의 푸르디 푸른 충혼을 길이 기념하는 보훈문화가 우리사회에 깊이 뿌리내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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