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심판을 그만두자마자 대한축구협회(KFA) 심판위원장직을 맡게 된 이정민(48) 신임 심판위원장은 소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심판 운영을 강조했다.
KFA는 2개월여 공석이었던 심판위원장에 이정민 현 부위원장을 선임했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심판위원회는 지난 4월 초 KFA 이사진 일괄 사퇴로 김동진 당시 심판위원장이 물러난 이후 그동안 부위원장 대행체제로 운영되어 왔다. 그러다가 지난달 KFA가 추천위원회와 선정위원회를 열어 이정민 부위원장을 새 위원장으로 확정했다.
지난해까지 K리그 심판으로 활동했던 이정민 심판위원장은 올해 1월부터 KFA 심판부위원장을 맡아왔다.
2002년 심판에 입문한 이 위원장은 주로 부심으로 활동했다. 2009년부터 2016년까지 국제심판으로 활약하는 동안 2011년 콜롬비아 U-20 월드컵 등 주요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2011년부터는 K리그 심판으로 뛰면서 2017년과 2020년 대한축구협회 최우수 부심상, 2017년 K리그 최우수 부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KFA 홈페이지가 이정민 심판위원장과 만나 그의 생각과 포부를 들어봤다. 이 위원장은 현재 심판계가 처한 문제의 원인을 ‘소통과 신뢰의 부족’으로 판단하고, 심판계 안팎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정민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심판위원장직을 맡게 된 소감과 각오는?
올해 심판직을 은퇴하고 부위원장을 거쳐 위원장이 됐는데 아직 어색하다. 하지만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심판을 해왔듯이 위원장으로서도 열심히 해나갈 생각이다.
다들 상황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심판 선,후배들과 소통해보니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으니 서로 돕고 발전하는 것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심판계 현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위원장을 맡은 후 여러 전국대회를 돌며 심판과 심판평가관을 200명 가까이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문제점은 심판위원회가 권위적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심판들을 만나면서 할 얘기가 있으면 직접 전화하라고 명함을 줬는데도 전화 한 통이 오지 않더라. 여전히 심판들은 심판위원장과 위원회를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다.
- KFA 이사회에서 중앙 집권형 운영을 지양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위원장이 독단적으로 정책을 설정하고, 심판을 배정하는 문화는 이제 타파하고 싶다. 그래서 부위원장 3명을 선임해 각각 파트별 업무를 맡기고자 한다. 지금까지는 위원장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이제부터는 부위원장들에게 파트별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소위원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정책을 발굴하고, KFA 사무국과 협력하도록 하겠다.
-앞서 말씀하신 권한 분산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그동안 잘 이뤄지지 않았나?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맞는 말씀이다. 이제서야 권한 분산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것도 맞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 심판 배정의 투명성 강화도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 역시 전산 배정이 도입되면서 이미 어느 정도 확립된 것이 아닐까 새삼스럽게 이점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면?
전산 배정과 (경기) 한 달 전 배정에 대해선 심판들도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산 배정을 하더라도 배정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여전히 심판들은 혈연, 지연, 학연이 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래서 전국심판협의회 측에 의견을 전달해 심판 배정에 직접 참관하도록 할 예정이다.
- 심판계 내부의 소통도 필요하지만 팬이나 미디어와의 소통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심판 판정에 대한 팬들의 불신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위원장 업무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미디어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자리도 만들고 싶다. 명백한 실수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인정하겠다.
- 과거 미디어를 대상으로 판정 관련 브리핑을 실시하다가 중도에 그만둔 사례가 있다. 이를 다시 부활시킬 생각도 있나?
소통이라는 방향성으로 봤을 때는 맞지만 방법은 고민해봐야 한다. 일단은 변화하는 경기 규칙과 판정의 방향성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해야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다.
- 월드컵 심판 배출도 큰 목표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 방안은 무엇이 있나?
두 명의 심판(고형진, 김종혁 주심)은 2026 북중미 월드컵에 대비해 최근 K리그에서도 트리오 시스템(주심과 부심을 같은 멤버로 배정)으로 배정하고 있다. 아마 내년 아시안컵 이후 월드컵 심판 예비 후보군이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데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후에는 젊은 심판을 양성해 추후 월드컵에 대비하고자 한다. 더불어 해외 국가와 심판 교류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 최근 들어 K리그1 심판과 K리그2 심판을 구분하지 않고 K2 심판이 K1 경기에 배정되거나, K1 심판이 K2 경기에 배정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기조를 선택한 이유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할 것인지.
국제적인 추세에 따라간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좋은 심판을 양성하기 위한 과정이다. '고인 물'은 없다는 것이다. 프로는 냉정하게 실력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곳이다. 앞으로도 이런 기조를 계속 유지할 생각이다.
- 심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심판도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 아직도 심판 등록비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런 태도가 맞는지 되묻고 싶다. KFA도 심판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심판들도 스스로 자존감을 가지고 자질을 높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현장에서 만난 심판들에게도 ‘여러분이 변해야 다 변할 수 있다. 대신 나도 변하겠다’고 했다.
(KFA는 2014년부터 심판 등록비 납부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심판 등록비는 등록심판들의 체계적인 관리와 심판 관련 정책 집행을 위한 재원 확보에 활용되고 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주어진 임기 1년 6개월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 나는 부위원장을 맡을 때부터 사직서를 품고 다녔다. 심판들이 위원장을 하지 말라고 하면 언제든 그만둘 것이다. 하루를 하더라도 책임감 있게 하고 싶다. 은퇴한 심판 중에선 막내이고, 현역 심판들에게는 선배인데 내가 중간에서 가교 역할과 신구 조화를 위해 노력하겠다.